자유북한운동연합
 
'대동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그날을 위하여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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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미국 주재 대사가 숄티 회장(왼쪽)에게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하였다


수잔 숄티(Suzanne Scholte) 미국 디펜스포럼재단 회장이 미국 현지시간으로 지난 15일 대한민국으로부터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최영진 주미(駐美) 대사가 훈장을 전달한 수여식에서 숄티 회장은 “북한 주민들께 이 영예를 돌리고 싶다”며 “한강의 기적이 ‘대동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날을 위해 (모두와)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수백만의 남녀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은 전적으로 세습독재 정권의 책임”이라고 단언하며 이 같이 말했다. 대동강의 기적은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민주화된 북한을 뜻한다.
 
숄티 회장은 자신이 북한 인권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로 인권(人權)의 가치 등을 꼽았다. 그는 “북한은 세계인권선언에서 보장된 권리 중 단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세상”이라고 지적했다.
 
“(김대중·노무현·오바마 정부 등) 대답 없는 정부에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었음을 고백한다”고 밝힌 그는 그러나 무고한 희생의 근절이라는 인류의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숄티 회장은 연설에서 故 황장엽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황장엽 선생님을 만나 가까워지면서 북한 민주화의 사명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숄티 회장은 북한 민주화를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라디오 방송과 전단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북한에 정보를 끊임없이 보내는 한편 탈북난민 처우 개선을 중국에 계속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 후 그가 “자유 북한(Free North Korea)”을 외치자 장내는 박수로 뒤덮였다.
 
사상 처음으로 탈북민들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 체제의 실상을 고발하는 자리를 마련했던 숄티 회장은 2004년 미국 북한인권법 제정을 이끌어내는 등 북한 인권 문제에 큰 공헌을 해왔다.
 
정계 관련 활동과 별개로 10년째 북한자유주간(NKFW)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그는 노력을 인정받아 2008년 제9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교훈장 숭례장은 대한민국 국권(國權) 신장 및 외국과의 친선 증진, 외교 등에서 공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수잔 숄티 자유북한방송 명예회장 수교훈장 수락연설 전문(全文)-
 
먼저 이명박 대통령님과 최영진 주미(駐美) 대사님, 그리고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며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1996년부터 한국의 동료들 및 한국 거주 탈북민 여러분들과 함께 북한 인권 운동을 꾸준히 해온 결과 이 훈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먼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일을 제가 계속 할 수밖에 없었던 세 가지 이유가 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첫째, 미국인으로서 저는 우리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든 자유를 갈망하는 곳의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1945년 구소련과 함께 한반도를 38도선으로 갈라 신탁통치(信託統治) 하도록 결정했고, 북한 정권이 한국을 침공했을 때 모든 한국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한반도를 통일시킬 기회를 놓쳐버린 미국이 한국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지옥 같은 전화(戰火) 속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한국의 자유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들의 용기는 항상 마음속으로 기려야 하겠지만, 지속되는 한반도의 분단은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고 타협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처음 건국되었을 때 우리 선조들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기본 원칙을 저버림으로서 결국 나라가 나뉘어 남북 전쟁을 겪어야만 했었던 예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제가 지난 17년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점이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북한 주민들만큼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북한 주민들이 세계인권선언에 보장된 권리 중 단 하나도 누리고 있지 못한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감행된 잔학한 행위에 반대하는 결의로서 세계인권선언이 UN에서 채택된 1948년에 김일성은 권력을 쥐고서 북한 주민들이 세계인권선언의 권리 중 어느 하나도 누릴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신(神)께서 우리 개개인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인권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고 생각해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단지 비무장지대 이북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남한 국민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오늘 저를 초청해주신 최영진 대사님께서도 이 점에 깊이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한미(韓美) 기도조찬 모임에서 처음 뵈었을 때 최 대사님께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과거 최 대사님과 그 분의 어머님을 비롯한 가족 모두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북한군이 퇴각할 때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북한으로 끌려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아기였던 대사님이 울기 시작하자 군인들은 어머님이 행렬을 벗어나 아기를 달랠 시간을 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어머님은 자녀들을 데리고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왔고 마을은 맥아더 장군에 의해 곧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지금 최 대사님께서는 대한민국이라는 훌륭하고 역동적인 민주주의(民主主義) 국가에서 일하고 계시지만, 만약 가족을 살리기 위한 어머님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대사님의 운명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제가 북한 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세 번째 이유는 기독교적 신앙입니다.
 
3대 세습독재 아래에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고백을 듣고 전달하는 노력에도 (김대중·노무현·오바마 정부 등) 대답 없는 정부에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이 일로부터 돌아설 수 없었습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제가 1997년 탈북민들이 사상 처음으로 북한 체제의 실상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있게 하고, 1998년 정치범수용소 첫 생존자들을 (미국으로) 초대하고, 1999년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첫 의회 청문회를 조직하는 등 북한 인권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안 얼마나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로 인해 얼마나 좌절했는지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만 명의 주민들이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핍박당하고 있고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이후 우리 스스로 다짐했던 그 약속, 무고한 삶이 희생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서 있지 않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에 저는 좌절했습니다.
 
이러한 좌절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 왜 제가 이토록 북한 인권에 대한 애통(哀痛)한 마음을 가지게 하셨느냐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만큼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해 달라던 저의 기도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북한 인권 운동이 저의 사명이라는 점은 제가 그 후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창시자이자 김일성의 오른팔로써 김일성 정권 창설을 도왔던 황장엽 선생님을 만나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황 선생님은 제가 하는 일들에 감사를 표하셨고 그럴 때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후 황 선생님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시는 것을 보면서 그(복음 전파) 또한 주민들에 대한 북한 정권의 뒤틀린 세뇌교육의 끈을 얼마든지 끊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족들은 가끔 제가 하는 일 - 탈북민들을 초청하고, 국회 청문회를 열고, 탈북 난민들을 돕기 위해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북한자유주간(NKFW)을 조직하는 등의 수많은 일들 – 에 핀잔을 주면서 제가 이 일을 통해 얻은 것은 두 가지, 드라이클리닝 20% 할인 쿠폰과 풍선뿐이라는 농담을 하곤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에 얽힌 에피소드(Episode)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2000년대 초 어느 날 세탁물을 찾기 위해 한 세탁소를 방문했는데 주인 분의 고향이 공교롭게도 북한이었습니다. 그 주인 분은 저를 알아보시고는 “지금부터 맡기시는 모든 세탁물은 20% 할인해드릴게요. 그게 저희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풍선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남편인 채드(Chad), 아들 제임스(James)와 함께 중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 현장 사진이 헤드라인에 실린 신문을 사러 한국 슈퍼마켓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임스가 사진 속 시위대가 들고 있는 풍선을 보더니 자기도 풍선을 사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 남편이 풍선과 신문을 구매해 계산하려고 하자 계산대의 여점원 분이 저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당신의 부인이냐고 남편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제 남편이 “네”라고 대답하자 그 점원 분은 “그럼 그 풍선은 그냥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서울평화상을 수상했고, 또한 오늘 이 자리에서 제 생애 가장 중요한 표창인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받는 크나큰 영예(榮譽)를 얻었습니다. 한국과 한국인들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제게 이 훈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북한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 그 어느 시기보다도 많은 주목과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북한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 난민들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만 해도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이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북한 정권이 쓴 돈은 15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작년 미사일 발사 실패의 결과로 8억5천만 달러, 즉 1,900만 명의 북한 주민을 1년 동안 먹여 살릴 수 있는 돈을 공중에 날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황해도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거나 기아(飢餓)에 시달릴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수백만 명의 남녀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은 전적으로 세습독재 정권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김정은이 이끄는 지금의 북한은 김일성 때나 김정일 때와는 다른 북한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북한 주민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며, 그들을 말 그대로 어둠 속에 가둬놓으려는 김정은 정권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외부 세상과 그들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많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김정일 정권 하에서 배급 체계가 무너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생존이라는 결단 속에 200여 개가 넘는 시장을 만들어 물건을 사고팔면서 북한 정권이 시장경제 단속을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주민들은 출세를 위해 노동당에 입당(入黨)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곧 다가올 김정은 체제의 몰락에 대비하기 위해 돈을 아끼고 모으기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 내부 사회의 엄청난 변화와 함께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 즉 라디오 방송·풍선(전단)·USB·VCD·DVD 등을 통해 정보를 보내는 한편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려는 노력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끊임없이 계속해야 합니다. 또한 탈북 난민에 대한 불법적이고, 잔인하며, 비(非)인도적인 처우를 개선하라고 계속 중국을 압박해야 합니다.
 
저는 북한이 3대 세습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날이 곧 오리라 믿습니다. 정보와 참된 지식(knowledge)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갈망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계속 커져갈 것이며,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굳은 생존의 결의는 그들이 실패한 지도자가 아닌 스스로의 결단력에 의지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제가 처음 북한 인권 운동을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제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두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첫째는 스킨십입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스킨십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1999년 처음으로 한국에 가기 직전 모두 “수잔, 한국 사람들은 누가 자기를 만지는 걸 싫어하니까 절대로 누구를 안아주면 안 돼”라고 하더군요.
 
물론 저는 그 충고를 가뿐히 무시했습니다. 작년에 열린 북한자유주간 기간에는 조선일보 등의 전면(全面)에 제가 누군가를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적어도 세 장 이상 실리기까지 했습니다. 황장엽 선생님까지도 저의 포옹에 익숙해지셔서 나중에는 저를 먼저 안아주실 정도였죠.
 
둘째는 입조심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북한 정권 교체에 대해 절대로 언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여론이 너무 대립적인데다가 사람들이 자칫 제가 세습독재 정권을 전복(顚覆)시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글쎄요, 저는 지금까지도 북한 정권 교체를 논할 시간이 한참이나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제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이제는 북한 정권이 교체되어 한국에서 일어난 ‘한강의 기적’이 북한 주민들이 마침내 참된 자유를 얻게 되는 그 순간 일어날 ‘대동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날을 위해 (모두가)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다.
 
제게 수교훈장 숭례장을 수여해주신데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리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북한 인권 운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신 북한 주민들께 이 영예를 돌리고 싶습니다.
 
자유 북한(Free Nor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