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북한운동연합
 
성노예로 팔린 여자들의 비애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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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동포1] 남편 찾아 두 번째 탈출 3개월째 '방안감옥살이'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의 허름한 주택가. 조선족 동포 윤대수(31•가명)씨가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으로 나설 준비를 한다. 먼저 안방문과 대문을 자물통으로 꼭꼭 잠근다. 집밖으로 나와서도 혹시 낯선 사람이 집 주변을 서성거리지는 않는지 연신 주위를 살핀다. 윤씨가 이렇게 조심을 하는 것은 탈북자인 아내 최영옥(25•가명)씨가 집안에 숨어 지내기 때문이다.

윤씨는 올 1월 중국 공안당국의 탈북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단속에 걸린 아내와 한차례 `생이별'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내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다시 탈출해 보금자리를 새로 꾸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윤씨는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다. 윤씨는 “아내는 2평 남짓한 작은 방안에 커튼을 치고 하루종일 틀어박혀 있다”며 벌써 석달째 햇볕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는 아내의 처지를 안쓰러워했다.

윤씨는 지난해 1월 최씨를 만나 아내로 맞았다. 최씨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북한을 탈출한 뒤 북-중 국경지대의 한 조선족 농가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 농가 주인의 소개로 윤씨는 최씨를 만나 결혼했다. 윤씨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나한테 시집오겠다 는 여자가 없었는데 최씨가 결혼하겠다고 해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1 월 불행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이 `탈북자가 있다'고 신고하는 바람에 중국 공안원이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최씨는 검거돼 다른 탈북자 50여명과 함께 북으로 넘겨졌다.

최씨는 “북조선에서 노동교화형 1개월을 선고받고 고향의 `노동단련대'에서 일했다” 며 “멀건 죽 한 사발 먹고 하루종일 중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정치교양을 받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아내가 잡혀간 뒤 한동안 넋을 잃고 지내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국경지대의 세관마다 돌아다니며 북한을 드나드는 조선족 무역상인들을 붙잡고 아내의 소재지를 알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내를 데려올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지난 3월초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 목소리였다. 아내는 "돌아왔다”고 말했다. 노동단련대에서 풀려나자마자 다시 강을 건넜다고 했다. 윤씨는 꿈인가 싶었다고 한다.

윤씨는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가 아내를 만났다. 아내의 상태는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노동단련대에서 얻은 발진티푸스 때문에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생사를 헤매고 있었다. 최씨를 진찰한 의사는 “대체 생사람 죽이려 했느냐, 왜 지금까지 그대로 내버려두었느냐”고 윤씨를 심하게 나무랐다.

다행히 최씨는 윤씨의 극진한 간호 끝에 보름만에 자리에서 일 어났다. 부부는 다시 만났지만 `언제 다시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공포에 떨고 있다. 더구나 최씨가 다시 붙잡혀 북으로 넘겨지면 탈북전력 때문에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질 가능성이 높다.

최씨는 “남편이 너무나 보고 싶어 다시 중국으로 건너왔지만 조선 땅에 있는 가족들이 나 때문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이라며 굵은 눈물만 흘렸다. 윤씨는 그런 최씨의 손을 꼭 잡고 “다시는 결코 당신과 헤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탈북동포2] 낮엔 토굴은신 새벽 틈타 민가로

북한의 혜산시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장백 조선족자치현은 탈북자들의 주요 `탈북 통로'다. 장백현 바로 앞쪽을 흐르는 압록강 상류가 두만강에 비해 강폭이 좁고 깊이가 얕아 강을 건너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한 달에 1천여명이 압록강을 건너 장백현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공안당국은 올해 들어 탈북자 단속에 나서면서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다.

장백현의 조선족 동포 유아무개(37)씨는 “지난 4월 무장한 중국 공안원들이 장백현 뒷산인 `탑산'을 샅샅이 뒤져 탈북자 400~500명을 잡아갔다”고 말했다. 그 뒤로 소총으로 무장한 공안원들이 탑산 곳곳에 배치돼 서성거리는 사람을 무조건 검문하고 탈북자로 밝혀질 경우 곧바로 끌어가고 있다. 탈북자들은 단속을 피해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어 간다. 낮에는 공안원들을 피해 동굴이나 숲속에 숨어 지내다 공안원들이 산에서 철수하는 새벽을 틈 타 인가로 내려온다. 조선족 동포 강아무개(38)씨는 “탈북자들은 새벽에 산아래 마을로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물과 옷가지 등을 얻거나 물건을 훔쳐간다”고 말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했지만 중국 공안당국의 단속 때문에 또다시 굶주림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산에 숨어지내는 탈북자들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서로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장백현 조선족 사이에서 나돌기도 한다.

중국 공안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조선족들이 예전처럼 탈북자들한테 도움의 손길을 쉽게 내밀지 못한다. 그만큼 탈북자들은 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한다. 두만강 유역의 조선족 ㄱ마을에서 만난 평안남도 출신의 탈북자 한동철(32•가명)씨는 지난 5월말 강을 건넜다. 2주 동안 내린 비로 강물이 크게 불어 물살도 세찼다. 사흘을 굶었지만 `이래도 저래도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강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한씨는 “우리 마을은 100가구 정도 사는데, 30% 정도가 굶어죽었다”며 “조선에서 굶어죽을 바에야 `중국에서 밥이나 한번 배불리 먹고 죽자' 하는 심정으로 중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 중국 땅을 밟은 한씨는 강변에 있는 조선족 농가의 문을 두드리며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농가 주인은 “당신을 받아줄 수 없다”며 문을 닫았다. 탈북자들을 숨겨주다 발각되면 5천위안(한국 돈 60만원)의 무거운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한씨는 무려 스무 곳의 문을 두드린 끝에 간신히 이웃 마을의 한 조선족 농가에 숨어들 수 있었다.

한씨는 공안원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씨가 하루종일 일을 거들고 받는 품삯은 5위안(한국 돈 600원)에 불과하다. 한씨는 “조선에서는 부모고 자식이고 서로 각자 알아서 식량을 구해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이상 삶에 대한 희망이 없다. 앞으로 살아갈 방도를 좀 알려달라”며 기자에게 통사정을 했다.


[탈북동포3] 인신매매범 검은 손길, 쫓고 쫓기는 '피말리는 삶'

중국 연길시에서 북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조선족 마을. 탈북여성 이영자(28•여•가명)씨는 태어난 지 6개월 째인 아이를 업고 밭일을 나선다. 조선족인 남편 정아무개(40)씨는 폐결핵에 걸려 앓아 누워 있어 노동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씨는 식량난을 견디다 못해 중국으로 넘어오다 인신매매범에게 붙잡힌 뒤 정씨한테 팔려 가정을 꾸렸다.

이씨는 지난 97년 12월 처음 북한을 탈출해 중국 땅을 밟았다. 식량을 구한다며 집을 나간 남편이 1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는 데다 3살된 딸이 굶어죽을 지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강을 넘자마자 인신매매범한테 붙잡혔다. 이 때는 다행히 인신매매범 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쳐 북한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씨는 지난해 초 다시 강을 넘었다. 식량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는 또 인신매매범한테 붙잡혔다. 인신매매범들은 탈북자들이 넘어오는 강변에서 `잠복근무'를 하 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 현재의 남편인 정씨한테 5천위안(한화 60만원)에 팔렸다. 이씨는 두차례나 인신매매범한테 붙잡히자 모 든 것을 체념하고 살고 있지만 올해 들어 한 달에 2~3차례씩 마을에 들이닥치는 중국공안원들의 탈북자 단속에 마음을 조리고 있다. 더욱이 단속이 강화되는 틈을 노려 인신 매매범들까지 설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신매매범들이 공안원 옷을 입고 마을에 나타나 탈북여성 1명을 납치해 갔다고 한다. 이씨는 “100여가구 정도 사 는 이 마을에만 인신매매된 탈북여성들이 10명”이라며 “탈북 여자들의 90%는 인신매매 당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조선에 있는 딸은 이미 굶어 죽었을 것이고 중국에서 애까지 생겨 이제는 돌아갈 수가 없다”며 “수입은 한 푼 없는 데 남편의 한달 약값만 1천위안(한화 12만원) 정도가 들어 갈수록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중국 공안당국의 탈북자 단속이 심해지면서 `꽃제비'로 불리는 탈북 소년들도 어렵게 하루하루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연길 시내에서 만난 이 아무개(16)군은 “지난 4월 내 주변에서만 30여명이 잡혀갔다”고 말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공안원이 단속나올 조짐을 보이면 곧바로 고층 아파트 옥상이나 부서진 창고등 `아지트'로 숨어들어가 꼼짝을 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이들을 숨 겨주는 마음씨 좋은 조선족 동포를 만나면 굶주림은 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걸을 하지 못해 며칠이고 배를 주리고 지내 야 한다. 이렇게 공안원을 피했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마을에서 물건이라도 분실되는 사건이 일어나면 무조건 `꽃제비'들이 용의자로 몰려 파출소로 잡혀간 뒤 북한으로 넘겨진다. 얼마 전에도 비디오방에서 한 사람이 지갑을 잃어버리자 탈북 소년 3명이 파출소로 연행됐다.

강훈(15•가명)군은 “언제 잡혀갈 지 몰라 불안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밥이라도 굶지 않으니 조선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탈북동포4] 마을 산속 급습 '투망식 검거'

올해 들어 중국 장백현 시내에서 서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외곽지역에 2층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철문이 여느 건물과 달라 보인다. 이 건물이 바로 중국 공안당국의 단속에 걸린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되기 전 거쳐가는 수용시 설이다. 조선족 동포 하진구(40•가명)씨는 “원래 사무실로 쓰기 위해 짓다가, 붙잡히는 탈북자들이 급증하자 임시수용소로 개조했다”며 “100여명 가량의 탈북자들이 모이면 한꺼번에 북한으로 되돌려 보낸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탈북자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비로소 단속을 하는 등 사실상 탈북자들을 묵인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국경 마을의 경우 한 달에 두세차례 정기적으로 단속을 벌일 정도로 강화했다. 탈북자들이 숨어있는 조선족 마을을 급습할 때는 새벽 2~3시께 마을 입구와 탈출로 등 모든 통로를 막은 채 탈북자들을 검거하는 `투망식' 단속을 벌인다. 탈북자들이 미리 눈치를 채고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민간인 복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조선족 농가에서 날품을 팔고 있는 탈북자 최아무개(38)씨는“지난 4월 중순께 갑자기 중국 공안차량 석대가 마을로 들이닥쳐 마 을 뒷산에 숨어있던 탈북자 15명 가량을 잡아갔다”고 말했다. 백두산 부근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는 조선족 신아무개(45•여)씨는 “지난 5월 중순께 공안원들이 새벽에 들이닥쳐 이 마을에서 만 30여명의 탈북자들을 잡아갔다”며 “이때 다른 지역의 공안원들이 이 마을에서 단속을 벌였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북한 정권의 항의가 있었을 것으로 조선족 사회는 분석한다. 북한을 자주 드나드는 조선족 상인 이칠상(47)씨는 “북한정권이 이완됐던 사회 분위기를 추스르는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실태가 해외언론에 자주 소개되면서 국제문제화될 조짐을 보이자 중국에 강력히 항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붙잡으면 연길, 통화, 장백 등 국경지대 도시의 임시수용소나 감옥에 모은 뒤 북한으로 보낸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북한으로 아이를 데리고 갈 것인지, 중국에 남겨놓고 갈 것인지를 본인이 결정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여성과 젖먹이와 `생이별'도 벌어진다. 하룡에서 탈북자 송환모습을 봤다는 조선족 이아무개(40• 여)씨는 “젖먹이가 어미와 안 떨어지려고 울고 보채고 하다보니 애를 데리고 북한으로 송환되는 여자들도 있었다”며 “어른도 굶어죽는 판에 젖먹이들이 조선에서 살아남겠냐”며 안타까워했다.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들은 대개 혜산, 청진 등에 설치된 `집결소'로 보내져 조사를 받은 뒤 1~6개월 정도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진다. 탈북자 이아무개(36)씨는 “어린이들은 바로 풀려나지만 어른들은 노동형을 선고받은 뒤 군마다 있는 노동단련대로 보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에 있는 동안 남한 사람과 만난 사실이 드러나거나 당관료•군인•보위부원 출신이 탈북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정치범수용수로 보내진다고 이씨는 전했다.

[탈북동포5] "탈북자 난민지위등 인권 보호책 세워야"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몰래 도와주고 있는 조선족 동포 유기범(50•가명)씨는 지난해 8월 그를 찾아왔던 한 탈북청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청진에서 대학을 다니다 탈북한 이 청년은 한국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는 유씨의 권유에 따라 한국 영사관을 찾아가“한국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유씨는 “영사관 직원이 `북한의 간첩일지도 모르는데 한국으로 보냈다가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겠느냐'며 거절했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중국에서 만난 탈북자들은 대개 한국으로 가고 싶어했다. 현재 중국 내 탈북자들은 10만~20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은 없다. `정보 가치'가 있는 탈북자들을 제외한 `보통' 탈북자들은 밀입국을 하거나 여권을 위조해야 한다.

올해 들어 중국 공안당국의 탈북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탈북자를 돕는 단체들 사이에서는 탈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국제법상의 `난민 지위'를 부여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 지동 목사)는 지난 4월부터 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해 줄 것을 유엔에 청원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1천만명 서명을 목표로 벌어지고 있는데, 현재 서명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난민이란 `인종•종교•국적•정치적 견해 등의 이유로 박해를 피해 조국을 떠난 뒤 귀환하지 못하거나 귀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지난 51년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은 “난민에게 자국민과 동동한 경제적•사회적인 권리를 부여해야 하고, 난민을 위험한 본국으로 강제 송환할 수 없으며, 난민이 제3국으로 여행하기를 원할 경우 여행증명서를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난민으로 인정되면 본인이 원할 경우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 사이에 는 탈북자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운동을 벌이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합' 윤현 이사장(70)은“중국에 국제적인 압력을 가해 중국 안에 난민캠프를 만든 다음 탈북자들을 수용해 보호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이 송환되면 노동단련대에 보내져 혹독하게 생활하고, 일부는 정치범으로 처벌받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정치적 난민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이종무(40) 정책실장은 “난민협약에서 규정하는 난민은 정치적 난민을 의미하는데, 탈북자들 은 식량난민이기 때문에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의 난민지위 문제를 현안으로 부각시키면 중국과 북한을 자극해 탈북자 단속만 강화될 것”이라며 “탈북자들에 대한 꾸준한 물질적 지원과 대북 식량•비료지원, 남북 농업교류사업을 더욱 활발히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과 관련해 한 법무부 당국자는 `개인의견'임을 전제로“헌법은 대한민국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탈북자들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보호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아쉽다고 말했다.